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송편빚기

며칠 전 엄마와 함께 서울에 다녀오면서 기차에서 바라 본 풍경 속에는 가을의 풍성함이 들녁 가득 아로새겨져 있었답니다. 익은 벼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추수 때를 기다리는 것 같았고, 사과나무는 마치 동화 속 주인공인 듯 빨간 사과를 주렁주렁 참 많이도 달고 있었지요. 새빛으로 물들어가는 나무들과 빛살가루 받아 반짝이는 갈대들은 가을 바람에 신이 나 춤까지 추고 있었지요. 풍성함에, 선선한 바람에, 풀벌레 소리에 '아, 이제 정말 가을인가 보다.',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자니 벌써 추석이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이번 추석은 주말과 임시공휴일이 된 10월 2일까지 포함해 모두 열흘간의 긴 연휴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또는 가족들과 해외로 여행간다는 소식을 참 많이 접하게 됩니다. [좋겠다!] 싶으면서도 아이들 둘 데리고 여행 가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렇게 미련이 남지도 않습니다. 이번 서울행에 수술을 하신 친정 엄마도 우리집에 함께 계시기도 하고 말이지요. 긴 연휴에 엄마와 더 좋은 시간 많이 보내야겠어요. 엄마는 늘 바쁘셔서 뭔가 늘 함께 있기 힘들었는데 엄마가 수술을 하시면서 어떻게 저희 모녀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게 되었답니다. 그만큼 부딪힐 일도 많긴 하지만, 그래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엄마와 더 많은 식사도 하면서 좋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답니다. 그러다가 추석 이야기가 나왔어요, "추석에는 송편을 빚어야 맛이고, 설에는 떡을 썰어야 맛인데." 사실 명절에 이런 일들을 하는 게 힘들긴 하지요. 그렇지만 제 기억에도 엄마랑 할머니랑 동생들이랑 함께 둘러앉아 설에는 세배드리며 덕담듣고, 추석에는 송편빚고 성묘가고.. 명절에는 명절만의 특별한 일들이 있는 건 사실이예요. 우리 아이들은 나중에 자라서 명절을 어떻게 추억할까 생각하다보니 명절 고유의 색깔이 옅어지고 있는 요즘 세태가 아쉽기도 하답니다. 그러고 있는데 문득 엄마가 그러셨어요, "송편 한 번 빚어볼래?" 

"Who am I?"

↗우리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직접 빚어온 송편이랍니다, 자기 주먹 반도 안되는 저 작디 작은 송편을 열심히 꼭꼭 눌러가며 만들었을 것을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절로 났습니다. 작년엔 선생님이 만드신 듯한 송편을 받았었는데, 이번엔 정말 우리 아들 고사리손으로 직접 빚은 송편을 받아서 기분이 또 새로웠답니다. 

 

 

↗검은콩을 반나절동안 물에 불려두었다가 그 물 그대로 냄비에다 한참을 끓여주었습니다. 살짝 말랑한 느낌으로 씹힐 때까지 끓이다가 티스푼으로 굵은 소금을 조금 넣어주어 밑간을 했어요.

↗소금에 이어 이번엔 빠넬라(사탕수수가루)를 아빠숟가락으로 3스푼 넣어준 뒤 물기가 없어질 때까지 계속 졸여주었지요. 물기가 있으면 송편을 빚기가 힘들거든요. 빠넬라 대신 설탕을 넣어도 상관없지만 양은 줄여주셔야 한답니다. 설탕을 조금씩 넣어가면 원하는 당도를 조절하세요.

↗이번엔 깨끗하게 씻은 커다란 포도 한 송이를 냄비에다 넣고 모두 짓이겨 준 뒤 설탕 한 스푼을 뿌리고는 바글바글 끓여주었답니다. 끓기 시작하고는 약한 불로 줄여서 껍질의 색이 진하게 우러나오도록 10분 정도 졸여주었지요. 불을 끄고 나서는 면보에 싸서 건더기는 모두 걸러내고 포도즙만 따로 짜 주었답니다.

멥쌀가루에 소금을 한 꼬집 넣어준 뒤 뜨거운 포도즙을 부어가며 익반죽을 시작했어요. 저는 마트에서 판매하는 마른 멥쌀가루를 사용했기 때문에 멥쌀가루가 불면서 포도즙을 많이 필요로 했어요. 불린 멥쌀을 방앗간에 가서 갈아오신 경우라면 반죽할 때 들어가는 물이나 포도즙의 양이 달라질 수 있어요. 또 하나 중요한 건 반죽할 때 꼭 뜨거운 물로 익반죽을 해야 한다는 것이랍니다. 그래야만 쌀가루가 익으면서 반죽이 잘 된답니다, 손 데지 않게 조심하세요!   

↗하얀 멥쌀가루가 포도즙을 한가득 머금고 정말 예쁜 보랏빛이 되었답니다. 멥쌀가루에 포도즙을 부어가며 반죽을 할 때 너무 질지 않도록 꼭 조금씩 부어주세요. 왼쪽 사진에 보면 반죽이 잘 되지 않는 것 같고 '물이 더 필요한가?' 싶은 모양새이지만 계속 치대며 반죽을 하면 오른쪽 사진처럼 매끄럽게 변한답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송편 속을 가득 채워줄 소는 두 가지로 준비했답니다. 하나는 살짝 달짝지근한 검은콩이고 또 하나는 아몬드가루랍니다. 저는 냉동실에 통으로 된 생아몬드가 있어서 전자레인지에 2분 돌려준 뒤 핸드블렌더로 잘게 갈아주었답니다. 거기에 통깨를 조금 넣어주고, 빠넬라를 한 스푼 넣고, 아몬드가루가 날리지 않고 살짝 뭉쳐질 정도로 올리고당을 넣어주었답니다. 올리고당 대신 꿀을 넣어도 되니 집에 있는 재료를 봐가며 선택하세요.

↗멥쌀가루반죽과 두 가지 소가 준비되었답니다. 멥쌀가루반죽은 꼭 젖은 면보로 덮어두고 송편을 빚을 만큼 조금씩 떼어 쓰셔야 한답니다. 반죽이 마르면 송편을 빚을 수가 없거든요, 젖은 면보로 촉촉함을 꼭 지켜주세요.

송편빚기 시작! 엄마는 검은콩을 넣어 빚으시고, 저는 아몬드가루를 넣어 빚었답니다.

↗반달모양은 엄마 솜씨, 동글동글 경단모양은 제 솜씨랍니다. 저 우주선같은 건 엄마가 제가 만든 송편을 둘러서 만드신 것이랍니다. 왜 그렇게 하는건지 여쭤봤더니 원래 그렇게 하나씩 다른 모양도 있고, 찌그러지기도 해야 재미있는 거라고 하시네요. 그렇죠, 어릴 때 할머니랑 엄마 곁에 앉아서 송편을 만들 때면 꼭 특이한 모양을 만들어서는 "이건 내거!" 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곤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게 참 재미있었지요.

↗찜기에다 젖은 면보를 깔고 열심히 빚은 송편을 예쁘게 놓아주었답니다. 떡이 쪄지면서 서로 들러붙지 않도록 꼭 간격을 띄워주어야 한답니다. 안그럼 옆구리가 다 터질지도 모르거든요.

센 불에서 김이 날 때까지 찌다가 한 김 오르고 난 후에 약불로 줄여서 10분 정도 쪄 주었답니다. 뜨거운 김에 익혀주었더니 반들반들 윤도 나고 빛깔은 더 고와졌습니다. 뜨거울 때 먹어보니 포도향도 은은히 나고 아몬드가루를 넣은 동글송편도, 검은콩을 넣은 반달송편도 참 맛이 있습니다. 두 가지 소들이 포도향과 안 어울리면 어쩌나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떡을 한 김 식힌 후에 먹어보니 아쉬운 점이 한가지 있었습니다. 마른 멥쌀가루를 사용했더니 불린 쌀을 갈아서 송편을 만들었을 때보다는 조금 퍽퍽하다는 점이었지요. 그래서 다음 번에는 찹쌀가루를 멥쌀가루의 1/5 정도 넣어서 떡반죽을 해야겠다 생각했지요. 그럼 더 쫄깃할테니까 말이예요.

↗찜기에서 떡을 꺼내서 채반에 올려 뜨거운 기를 빼 주었답니다. 그런데 엄마가 떡을 꺼낼 때 물에다 참기름을 한 방울 떨어뜨려서 손에 묻혀가며 떡을 꺼내라고 하시네요. 이건 왜 그렇게 하나 싶었는데 해 보니 금방 쪄 낸 떡을 맨손으로 만지면 너무 뜨거우니 물에다 손을 넣어 뜨거운 열기를 식히라는 건가 봅니다. 참기름은 아마도 꺼내놓은 떡이 서로 붙지 말라고 물에 떨어뜨리는 게 아닌가 싶어요. 게다가 살짝 발린 참기름의 고소한 향이 떡의 풍미를 더해주기도 하니 이야말로 꿩먹고 알먹고, 일석이조 아니겠어요. 채반에 담긴 떡이 다 식으면 접시에 담은 뒤 수분이 날아가지 않도록 꼭 랩으로 덮어주세요. 뚜껑있는 용기에 담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저는 네모난 접시에다 포도송이 모양으로 예쁘게 한 번 놓아보았답니다. 포도 한송이를 끓여 낸 즙으로 반죽을 하고 포도알처럼 동글동글한 모양의 송편을 만들어 다시 포도 한 송이를 만들어 보았지요. 아까 낮에 포도밭에 가서 포도를 사 올 때 포도 잎도 한 장 얻어올 걸 그랬지요. 포도 줄기는 포도알을 따 내고 남은 걸 잘라서 넣어 주었는데 포도 잎사귀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네요.  초록색 한지도 없고, 초록색 색종이도 안 보이고.. 어쩌나 어쩌나 고민하던 차에 제 눈에 들어온 깻잎 한 장, 흐흣! 깻잎을 가위로 대충 잘라서 포도 잎사귀를 대신해 보았답니다. 가을을 닮아 먹음직스러운 포도송편이 완성되었답니다.  포도 한송이 드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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