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텃밭농사, 드디어 심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근로자의 날을 맞아 정말이지 텃밭 근로자를 자처했던 날, 하늘에는 구름이 꽤나 많고 바람도 조금씩 불어주어 밭일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었답니다. 예보엔 전날과 동일하게 30도를 찍을 거라고 했었는데 구름 덕분인지, 간간히 불어준 바람 덕분인지 일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답니다. 정말 다행이죠, 만물의 주관자이신 그 분께 감사를!

↗이 하루로는 부족할 듯 하여 전날 저녁에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소형 관리기를 빌리고는 바로 밭으로 달려와 폐비닐을 걷고 밭에 널려있던 쓰레기들을 정리해 두었답니다. 햇볕에, 바람에 얼마나 고달팠으면 비닐이 다 삭아서 걷는데 자꾸만 뜯겨지고.. 비닐 걷으면서 너무도 애를 먹어서 우리는 꼭 수확하며 그 때 그 때 정리하자는 이야기를 나누었던 저녁이었답니다. 폐비닐은 100L짜리 쓰레기봉투에 꾹꾹 눌러담아 두 봉지가 나왔답니다. 그렇게 길었던 해가 산등성이로 넘어가고는 하루를 마감했죠, 그리고는 다음날 오전에 밭으로 가보니 이 모양이었어요. 어젠 한숨만 나왔었는데 그래도 비닐을 걷어놓고 보니 '아, 이젠 뭔가 할 수 있겠다.' 싶었답니다. 그래도 여전히 건초도 많고 풀도 많고 진흙땅이 다져져 흙도 딱딱했지만 말이지요.

↗어제 저녁 한달음에 달려가 빌려 온 소형 관리기를 트렁크에서 트려서 남편이 뚝딱하고 조립을 했답니다. 저 혼자 텃밭을 일궜다면 분명 호미들고, 낫들고, 삽들고, 곡괭이들고.. 그렇게 손으로 뭔가를 해 보려고 쌩쑈를 했을텐데.. 남자들은 기계 쪽에 관심이 많다고들 하더니 정말 그런가 봅니다. 쓸 줄 모르지만 그래도 기계를 사용해서 조금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더라고요. 사실 농기계임대사업소에도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간단한 설명을 해 준 뒤 농기계를 빌려주는 것 같긴 했지만, 저는 혹여라도 다칠까 걱정이 되어 농기계를 쓸 생각은 하지도 않았거든요. 흐흣, 기계치 아닌 남편이 왠지 멋져보입니다.

농기계임대사업소에서 빌려 쓰세요!(http://liebejina.com/104)

↗드디어 남편이 빌려온 관리기로 밭을 갈기 시작했습니다. 완전 미니 사이즈인지라 밭을 깊게 갈지는 못하지만 호미들고 삽들고 하던 걸 생각하면 이건 완전 신세계같은 결과물이었답니다. 꽤나 넓은 텃밭을 짧은 시간 내에 다 갈아내는 모습에 지난 해와 같이 올해에도 탄성이 절로 나왔답니다. 밭을 갈기 전에 미리 건초들을 긁어낸다고 긁어냈음에도 너무도 많은 건초들, 저것들이 관리기 날에 돌돌돌 감겨서 신랑이 중간 중간 건초들을 풀어낸다고 애를 먹긴 했지만 말이지요.

↗관리기로 밭을 한 번 갈아엎은 뒤 고랑을 만들고 있는 우리 남편입니다. 고구마를 심을 곳은 나중에 고구마를 캘 때를 생각해서 두둑을 조금 높여주기로 했거든요~ 저 흙더미 속에 주렁 주렁 달린 고구마를 캐며 우리 아이들이 지를 탄성을 생각하며 아빠의  마음을 담아 열심히 두둑을 올렸을 거예요. 올 가을이면 아이들은 "아빠, 최고!"를 외치게 될 거예요. 아마도 아빠 어깨는 들썩들썩 하겠죠?

↗고랑에서 삽으로 흙을 뜨다가 저는 "악-!" 소리를 지르며 뒤로 자빠질 뻔 했답니다, 바로 요녀석 때문에 말이지요. 한 삽 뜨는데 갑자기 땅 속에서 위로 쑤욱 올라오는데 저는 뱀인 줄 알았거든요. 얼마나 굵고 길쭉하던지.. 한참동안이나 소름이 돋아 바들바들 떨었는지 모른답니다. 엄마 말씀으론 분명 어릴 땐 지렁이를 손에 들고 잘도 놀았다고 하시던데 지금은 왜 이렇게 지렁이를 보면 기겁을 하게 되는지 모르겠네요. 지렁이가 너무도 많은 이 땅, 덕분에 땅은 정말이지 비옥하겠지만 저는 앞으로도 여러번 기겁할지도..^^;

↗길쭉한 땅을 반 정도 잘라서 비닐을 씌웠답니다. 밭이 너무 길쭉하게 생겼으니 구획을 좀 나누는 게 어떠냐는 저희 부부의 의견이 맞아떨어진 것이지요. 텃밭농사 초보자인 저희 부부는 이랑이 너무 길면 수확 중에 몸살이 날지도 모르거든요. 헤헷!

 

 

두둑을 높여준 곳에는 예정대로 고구마를 심어주었답니다. 일일이 손으로 심었던 기억밖에 없는 제게 남편은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었지요, 별 거 아닌 듯 희한한 고구마심는 장비를 가져와서 그냥 쓰윽- 심더라고요. 어찌나 편한지! 한 번 써 보고 나니 장비 없이 손으로 심는 건 불편하더라고요. 역시 사람은 더욱 편리함을 추구하게 되죠.

고구마, 쉽게 심는 방법 아십니까?(http://liebejina.com/106)

↗대파 모종도 한 이랑 가득 심어주었답니다. 이런 저런 반찬 만들고 국 끓일 때 많이 쓰는지라 집에 파가 떨어지면 안되는데.. 이렇게 심어두고 나니 어찌나 든든한지! 모종을 70개 샀는데 한 포트에 파가 4-5 뿌리씩 있더라고요, 너무 여러 뿌리가 있으면 파가 굵어지지 않는다고 그걸 나눠 심으라고 하길래 70개의 파는 순식간에 140개가 되었답니다. 이렇게 가느다랗고 아가아가한 파가 무럭무럭 굵직하게 잘 자라나서 저의 밥상의 든든한 기본재료가 되어줄 올 여름을 기대해 봅니다.

↗기둥 아래에는 오이도 심고, 호박도 심었답니다. 가시오이 2포기, 백오이(조선오이) 2포기, 애호박 2포기, 조선호박 2포기를 심었지요. 그리고 뉴질랜드산 단호박을 쪄서 먹고는 씨를 받아서 식목일에 우리 딸이 어린이집에서 우유팩에다 씨를 심어 싹 틔워 온 단호박도 옆에 나란히 줄 지어 심어주었답니다. 단호박이 꼭 열리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답니다.

↗오이 모종이 너무도 예쁘게 자리를 잡았어요, 시원한 오이 많이 달려서 올 여름엔 오이 냉국도, 오이 피클도 많이 만들어 먹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간절히 담아 토닥토닥 흙을 덮고 도닥여 주었답니다.

↗청양고추 10포기는 앞 줄에 심고, 풋고추 10포기와 아삭이고추 2포기는 뒷 줄에 심었답니다. 이만큼이면 우리 가족 여름 내내 고추 걱정 없겠다 싶었는데 어쩌다 아이들 데리고 어린이날 큰잔치 갔다가 풋고추 4포기를 얻어와서 고추가 풍년이 될 것 같은 예감, 친한 언니 동생들과 조금씩 나눠 먹어야겠어요. 

↗지난 해 딸기를 심어보니 그닥 결과가 좋지 않아서 올해엔 사지 않았는데, 모종 파는 할아버지께서 "아이들이 딸기 좋아하지 않느냐, 아이들이 좋아하는 딸기가 어떻게 열리는지는 알고 커야지." 하시며 딸기 모종을 두 포기 주셨답니다. 그렇게 얻어 온 딸기 모종도 이랑 제일 끝에다 다독거리며 잘 심어주었답니다. 올해엔 꼭 빨갛게 익은 달콤한 딸기를 아이들이 제대로 따 먹을 수 있길 바라봅니다.

↗깻잎도 많이 많이 심었답니다. 모종을 산 건 아니었어요, 지난 해에 이 밭에서 깨를 심은 분이 깨를 수확하시고는 깨를 털면서 꽤나 많이 밭에다 떨어뜨리셨는지 밭 이 곳 저 곳에서 깻잎이 우후죽순 올라오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깻잎 좋아하고, 들깨가루를 꽤나 사용하는 저인지라 그걸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일일히 뽑아서 모종을 했답니다. 꽤나 많아서 모종을 하고 남은 건 작게 통으로 뜯어서 쌈을 싸 먹었더니 작아도 향이 얼마나 짙고 맛도 좋았는지 모른답니다.

↗전날 저녁과 근로자의 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텃밭에서 시간을 보낸 제 손입니다. 안그래도 건조한 손으로 흙을 만졌더니 손이 다 터버렸네요. 그리고 얼마 하지도 않은 삽질, 호미질에 그것도 안 하던 일이라고 물집이 잡혀버렸답니다. 그런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고 되려 뿌듯한 이유는 아이들이 오늘 내가 흘린 땀과 이 수고로 인해 더 건강하고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먹을 수 있다는 자부심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너무도 기뻐할 그 모습과 그로 인해 저 역시 기쁠테니 말이지요. 이렇게 서가네 텃밭은 기쁨으로 새로운 생명을 보듬어 안게 되었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기 8장 7절 말씀]

- 여러분의 공감으로 제 하루는 더욱 행복하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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