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준비하는 남편 생일상
- 내가 살아가는 이 순간
- 2017. 10. 23. 02:12
처음 만난 이후로는 열한번 째이면서 결혼 이후로는 여섯번 째 맞이하는 남편의 생일이었답니다. 생일 선물을 무언가 하나 준비할까, 둘만의 시간을 좀 보내볼까.. 이래 저래 고민을 하다가 생일상을 정성껏 차려서 아이들과 함께 축하하는 시간을 갖자고 결정을 했답니다. 생일선물은 의미야 있겠지만 필요한 건 그 때 그 때 사 쓰는 요즘인지라 특별하다 싶은 느낌도 없고, 오랜만에 오붓하게 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긴 한데 아빠 생일이라고 함께 생일축하할 거라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는 아이들을 두고 그것도 좀 그렇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건 아이들이 조금 더 크고 난 이후로 미뤄두고 우리 부부도, 아이들도 모두 함께 축하하며 행복할 수 있는 생일 파티를 준비했어요.
↗우리 첫째와 함께 빵집에 가서 골라 온 블루베리요거트케익이예요, 얼른 아빠 생일 축하 하자면서 재촉하더니 케익을 꺼내주니 더 신이 났는지 초도 스스로 꽂았지요. 삐뚤빼뚤 꽂은 초지만 그 모습이 또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답니다. 아빠 생일을 축하하고 싶은 마음보다 생일케익을 앞에 두고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놀고 싶어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보다 얼른 저 케익을 먹고 싶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것조차도 예뻐 보이는 게 부모 마음인가 봅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어 많이 피곤한 요즘이지만 사랑하는 내 신랑이 태어난 소중한 날을 기념하는 거라고 생각하니 그게 또 제게 특별하게 다가왔답니다. 중요한 날은 늘 그렇듯 새벽 6시로 맞춰둔 알람이 울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눈이 번쩍 뜨였답니다. 제가 긴장을 하고 자긴 했나 봐요. 알람 소리에 아이들이 깨기라도 할까 봐 얼른 '알람중지' 버튼을 누르고는 살그머니 방에서 나와 거실 커튼도 걷고 환기도 시켰답니다. 그러면서 보니 어쩜, 너무도 아름다운 아침이었어요. 먼동이 트는 모습을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떠오르는 이 태양도,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구름의 실루엣도, 강을 따라 자욱한 물안개들의 춤사위도 너무도 놀라워서 아침부터 "우와!" 하며 감탄을 했었지요. 이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섭리, 모든 순간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일하시는 그 분의 성실하심에 자아낸 감탄이었겠지요. 잠시 이 멋진 풍경에 넋을 놓고 있다가 얼른 세수를 하고 주방으로 갔답니다. 일찍 일어났지만 그래도 제겐 너무도 바쁜 아침이었거든요.
↗이른 아침 내내 동분서주하며 열심히 차린 우리 신랑 생일상입니다. 이렇게 차려놓고 보니 또 뭔가 허전한 것이 많지 준비하지 않은 듯 해요,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말이지요. 한국사람이라면 생일날 미역국이 없으면 아쉽지요. 들깨소고기미역국을 가장 먼저 끓여두었어요, 미역국은 끓여서 바로 먹는 것보다 끓여서 한김 식혔다 다시 끓이면 그 맛이 더 깊어지고 좋거든요. 먹기 전에 한 번 더 끓여서 식탁에 냈답니다.
↗슬라이스햄, 채썬 파프리카와 오이, 새싹채소들을 넣고 무쌈도 돌돌 말아서 준비했어요. 저는 음식을 먹다가 느끼하거나 텁텁하다고 느껴질 때 아삭하고 새콤한 무쌈말이를 하나씩 먹으니까 개운하고 참 좋더라고요. 싱그러운 새싹채소가 살짝 나오도록 예쁘게 돌돌 말아서 미리 준비를 해 두었답니다.
↗다음으로는 잡채를 만들었어요. 평소같으면 돼지고기를 사용했을텐데 이번엔 횡성한우를 넣어서 잡채를 만들었어요. 신랑이 지금 한약을 먹고 있어서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먹지 말라고 안내를 받았거든요. 고기가 빠진 잡채는 신랑은 물론이고 저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번엔 소고기로 대체했답니다. 당면보다 야채와 고기가 많은 잡채를 좋아하는 저는 당면과 잡채에 들어갈 야채를 거의 1:1로 맞춘 것 같아요. 이번엔 야채의 가짓수는 3가지밖에 안되지만 그 양이 정말 많지요? 저는 참 좋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야채 싫어." 하면서 야채를 하나 하나 골라내며 잡채를 먹었답니다.
[온 가족이 즐기는 잡채 맛있게 만들기 http://liebejina.tistory.com/81]
↗맛살하트전도 구웠답니다. 이쑤시개로 모양을 잡아주고 다진 파와 당근을 넣은 달걀물을 가운데에 채워넣었더니 예쁘고 맛있는 맛살하트전이 완성되었지요. 사랑한다는 제 마음을 표현하기에 하트만큼 제격인 게 없는 것 같아서 선택을 했는데 신랑도 그걸 알아챘는지 마음에 들어했어요. 제가 좀 애교가 없는지라 이렇게라도 표현을 해야 할 것만 같았는데 그걸 잘 알아주니 그저 고마웠답니다. "여보, 고마워요."
↗메인요리는 훈제오리단호박찜이예요. 단호박은 씨를 빼내고는 따로 쪄서 준비해두었어요, 살짝 너무 익혔는지 꺼내다 단호박이 부서져버렸네요. (tip.단호박을 잘 씻은 후 전자레인지에 2분 정도 돌려주면 손질하기가 훨씬 쉽답니다. 그냥 손질하면 정말이지 잘 잘리지도 않고 너무 힘들어요.) 훈제오리는 뜨거운 물에 담가 합성첨가물과 기름을 쫙 빼준 뒤 팬에 노릇노릇하게 구워준 뒤 미리 준비해 둔 단호박 위에 얹어주었답니다. 모짜렐라 치즈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저 위에 치즈를 올려서 오븐이나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 드시면 또 그 맛이 참 좋답니다. 모짜렐라 치즈를 녹이는 동안 단호박도 조금 더 잘 익지요. 그렇지만 저는 치즈보다 그냥 저렇게 구워서 쌈야채와 된장과 먹는 걸 좋아하는지라 치즈는 생략했답니다.
↗연두부 위에 새싹채소를 얹은 뒤 오리엔탈 소스를 살짝 뿌려주었어요.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요리인데다 맛있고 건강하기까지 해서 제가 참 좋아하는 요리랍니다.
↗이건 해파리냉채, 신랑이 정말 좋아하는 메뉴인지라 없는 솜씨에 열심히 만들어 보았답니다. 해파리와 콩나물, 오이, 파프리카, 슬라이스햄, 새우살까지 넣어서 만들었지요. 해파리냉채는 먹기 전에 바로 무쳐야 야채에서 물이 배어 나오지 않고 맛있는지라 상에 내기 전에 바로 무쳤답니다. 지난 번엔 맛살도 찢어 넣었었는데 이번엔 정신없이 음식 준비를 하다보니 맛살을 깜박했답니다. 그래도 맛있게 먹어줘서 감사합니다.
↗신랑과 아이들, 친정 엄마까지 둘러앉아 신랑의 생일 아침밥을 먹었습니다. 아침부터 많이 먹기엔 부담스러운지라 조금씩 덜어먹었답니다. 지난 밤 저녁으로 당겨서 생일축하를 하고 식사를 할까 했었는데 신랑이 당직을 서는 바람에 그렇게 하질 못했답니다. 아침식사 때인지라 생일상이라도 간단하게 할까 했지만 그래도 아내로서 또 신랑의 생일상은 정성껏 잘 차려주고 싶었기에 고집을 좀 부린 것 같습니다. 남편이 그럽니다. "우와, 내 평생 이런 생일상은 처음 받아보는 것 같다." 생일은 늘 챙긴 것 같긴 한데 아이들 태어나고 하면서 늘 간단하게 차리거나 외식을 하거나 그랬던 것 같습니다. 신랑이 이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여 이렇게 생일상을 차리길 참 잘 한 것 같습니다.
↗생일케익에 불도 예쁘게 밝혔답니다. 아빠 생일 축하할 때도 밝히고, 아이들 생일 축하한다며 또 밝히고, 후~ 불어 불 끈다고 또 밝히고. 케익을 한 번 살 때마다 초가 정말 열일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니 몇 번이라도 다시 불을 밝히고 꺼도 상관없지요.
↗"사랑하는 우리 아빠~ 생일축하합니다." 생일축하노래의 마지막 소절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리 딸은 벌써 입 안 가득 공기를 머금고 "후~" 불 준비를 합니다. 생일축하 몇 번 해 보지 않은 것 같은데 저건 또 어떻게 아는건지 참 신기한 거 있지요. 둘째는 가르치지 않아도 어쩜 그리 잘 알고 눈치가 빠른지. 생일축하를 하는 동안 함께 박수치고 함께 기뻐하는 모습이 그저 예쁘고 사랑스러웠답니다. 아이들의 이런 모습에 더 웃게 되고 온 가족이 함께 더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아이들을 키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아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축복인 것 같습니다. 신랑의 입가에도 미소가 한가득 머금어졌어요, 회사일로, 가정일로, 교회일로, 여러 자리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수고하는 우리 신랑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길 바라봅니다.
↗생일축하를 하고 밥을 먹고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침 하늘과는 다른 모습의 멋진 하늘이 제가 가는 곳 어디든 있었지요. 시원한 바람에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들의 모습이 얼마나 웅장하고 멋졌는지 모른답니다. 이렇게 청량하고 아름다운 날 당신이 태어났구나 싶어 더 감동스러운 하늘 풍경이었지요.
"여보, 생일 축하해요. 당신이 있어서 참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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